안성은 경기도 3위의 담배생산지...매일신보 1912년 3월 기사
안성은 경기도 3위의 담배생산지...매일신보 1912년 3월 기사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7.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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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안성관련 신문읽기 – 14

191231041단 에는 總督府公文: 告示, 조선총독부고시 제82, [전화구역 추가 시행]기사가 있다. 신창(新昌)-안성간 1통화시의 통화료는 25전이고, 1회의 전화 호출료는 15전이다.

매일신보 1912년 3월 14일 3면3단

 

191231433姦夫姦婦死刑

강원도 강릉군 읍내성장으로 경기도 안성군 율동면 가좌리에서 주막영업하는 황성녀는 나이 지금 41세라. ○○라 하는 자와 십여년전부터 내외가 되야 지우금 같이 살새 그 계집은 원래 행위가 부정한 계집이라 본부의 이목을 속이고 그 근처에 사는 저보다 ·12세 아래되는 심○○이라하는 자와 비밀히 통간하야 금수의 행락을 취하나 매양 그 본부의 있음을 한할뿐더러 정이 간부에게 옮은 이후로는 본부의 모양이 점점 보기 싫고 간부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야 어떻게 하면 기탄없이 백년을 동거할까 하며 매양 한탄하다가 필경 본부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작년 음력 9월 중순에 그 본부 황운서가 술이 취하야 정신없이 자는 것을 보고 간부와 간부가 각각 식칼을 들고 들어가서 황○○의 목을 찔러 죽인후 그 시체는 거적에 싸서 경기도 죽산군 서산()면 산룡현 산중에 묻고, 외양으로는 어디를 갔는지 모르는 모양으로 발표한후 간부간부가 소원을 성취한줄로 알고 탄연히 살다가 필경 모처에 검거를 당하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심리하는 중이더니 지나간 11일에 그 간부간부는 모두 사형에 처하얏다더라

 

191231433단에는 황○○가 살해암매장 당한 사건과 관련한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지난주에도 이야기했듯이 관련 기사 내용이 더 구체적이다.

매일신보 1912년 3월 15일 2면6단
매일신보 1912년 3월 15일 2면6단

 

191231526京畿道煙草産額

최근 조사를 거한즉 경기도 관내의 연초산액은 기 재배면수 459, 작부반별 1,248反步, 수확총액 378,176관목인데, 1반보 평균 30300문이라.

수확의 최다한 자는 양지군, 장단군, 안성군, 개성군, 용인군이라더라.

 

담배농사의 힘든 것은 지금 60세 이상으로 담배농사를 지어본 농민들로부터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생산량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기사에 의하면 1912년 안성은 경기도에서도 세 번째로 담배 수확이 많았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 기사와 관련해 생각나는 것은 지금은 사라진 안성의 무형문화재 백동연죽장이다. 지금 70세 이상 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숭인동, 구포동, 명륜동 등 지금의 안성 시내에도 담뱃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안성의 얼과 맥”(1993)에는 연죽을 안성의 특징적인 수공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후기 남성들의 필수품이었던 연죽”(담뱃대)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연죽을 제작하고 판매하였는데 그 품질과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안성시지”(2010)에 의하면 담배는 임진왜란 후인 17세기초에 일본을 통해 전래된 특수층의 기호품이었는데, 담뱃대는 신분을 상징하는 사치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성의 경우 유기와 같은 금속공예가 발달해 백동연죽의 본고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 그만큼 담배의 생산도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이 이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안성의 백동연죽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7호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안성에서 가장 덜 알려지고 덜 연구된 문화재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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