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향수”: 내 인생의 노래들
정지용의 “향수”: 내 인생의 노래들
  • 시사안성
  • 승인 2021.10.27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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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32
정지용 시인
정지용 시인

1990년 여름,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고향 집에 들렀는데, 어느 젊은이가 카세트테이프로 나에게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서정적인 노랫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면서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테너 성악가와 대중가요 가수가 이중창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야 성악가와 가수가 함께 노래하는 게 드물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진기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향수를 노래한 이 듀엣 노래는 내 마음에 인상적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다가, 나는 처음 접하게 된 어느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게 되었다. 몇 장을 넘겨보던 순간 한 편의 시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그 시는 얼마 전에 내가 들어보았던 그 노래의 노랫말이었는데, 그 노래는 바로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가지고 만든 노래였다.

나는 그때 정지용이라는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하여 오랫동안 남한에서는 알려지지 못한 시인이었다.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것을 계기로 납월북 예술인 작품 전면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한창이었을 때, 나는 독일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소식을 접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정지용 시인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당시 서점에서 정지용의 시를 처음 접한 나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시들은 감동적이었다. 더욱이 나의 인상에 특별하게 남아 있었던 노래 <향수>의 시인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설레었다. 곧바로 시집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나는 저녁 수십 번에 걸쳐 오로지 <향수> 시를 낭송했다. 낭송을 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시가 전하는 그 애틋한 가족과 고향의 풍경이 더욱 내 마음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 편의 시와 더불어 온통 시인과 함께한 밤이었다. 시인은 고향을 그리면서 이렇게 노래를 시작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향수> 1)

이 노래를 부른 듀엣이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라는 것을 나는 그 후 알게 되었다. 1989, 저명한 성악가인 서울대 교수 박인수는 가수와 함께 부른 이 노래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에 휩싸였다고 한다. 노래 <향수>가 국민가요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자 국립 오페라단은 그를 제명한다. 클래식 음악을 모독했다는 게 그 이유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떤 선입견이나 장르의 구분 없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는 순순히 제명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또 애송하는 시 중 하나인 <향수>20대 초반에 정지용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 가며 쓴 시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고 한다.

김동률은 <<인생, 한곡>>이라는 책에서 이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사연을 이렇게 소개한다. 노랫말을 찾기 위해 시집을 살피던 가수 이동원은 서점 구석에 감춰진 <<정지용 시집>>을 찾아내 읽다가 그 길로 작곡가 김희갑의 집으로 달려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시 <향수>에 빠져 있던 이동원은 김희갑에게 곡을 붙여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김희갑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시의 운율이 곡을 붙이기가 쉽지 않고 또 억지로 곡을 붙일 경우 오히려 시의 의미를 다치게 하기 쉽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다. 그러나 이동원은 막무가내로 고집했고 결국 김희갑은 일 년 동안 고심한 끝에 이듬해인 1989년 초 이 곡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아직 모르신다면, <향수> 시 전문과 노래를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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