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달렸던 철도 다시 달립니다”
“안성에 달렸던 철도 다시 달립니다”
  • 시사안성
  • 승인 2021.10.23 09:1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안성’을 향한 뜻깊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역의 염원이자 19만 시민의 절실함이 담긴 수도권내륙선과 평택부발선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최종확정안에 반영된 것. 국가균형발전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할 안성철도시대는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안성최초의 철도였던 ‘안성선’이 개통된 건 96년 전인 지난 1925년 11월 1일이다. 11월 1일을 앞두고 지역발전의 꽃이 될 안성철도의 지난날을 상세히 들여다본다.

# 사통팔달 중심지, ‘안성’

안성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상업의 거점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다. 당시 안성읍내에 열렸던 안성장은 대구, 전주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장으로 꼽힐 만큼 규모가 컸고, 조선 중기 이후 급성장해 내륙 물자뿐 아니라 안성천을 통해 수산물까지 반입됐다.

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를 보면, ‘안성은 경기와 호남 바닷가 사이에 위치해 화물이 쌓이고 공장(工匠)과 장사꾼이 모여들어 한양 남쪽의 한 도회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영조실록은 ‘안성군의 장시는 한양의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서 화물이 모여든다’고 묘사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안성장의 중요성과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안성은 다수의 소비 인구와 물자 공급, 교통 중심지와 같은 최적의 조건을 갖추며 의미를 더했다. 토지가 비옥하고 강수량이 적절해 수해가 거의 없는 농업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안성은 영남로와 호남로를 지나는 길목으로 두 대로가 합쳐지는 지점이었다. 즉,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지역에서 한양으로 들어서는 관문이자 산물의 집결지로 남다른 성장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 일제 강점기 교통로, 안성의 변화상은

우리나라의 교통 혁신이 시작된 지점은 조선후기 김옥균이 치도론(治道論)을 주장한 구한말 시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국토의 전반적인 도로 규정은 크게 달라졌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서울-목포 간 개설된 도로는 안성 지방을 통과하지 않았다. 또한, 일제는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에 박차를 가하고자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는 내륙의 경우, 조선시대 주요 중심지를 통과하지 않고 비껴가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이로 인해 안성지방에는 철도 교통로가 연결될 수 없었고, 유통의 중심지였던 안성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지역 접근성과 분야 별 산업, 경제활동 등에 제약이 걸렸고 1920년대 초반에 이르며 장점이었던 교통 중심지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 ‘안성선’ 개통과 철거

경남철도 안성역 기차 발차장면
경남철도 안성역 기차 발차장면

이에 당시 안성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1925년 11월 1일 지난날의 소외와 역차별을 뒤로하고 안성에 철도가 개설됐다. 당시 경기선으로 개통됐던 ‘안성선’은 충남 천안에서 출발해 안성을 거쳐 이천의 장호원으로 연결되는 69.8km 철도였다. 조선경남철도회사 소속의 사설철도로써 1925년 11월, 천안-안성 구간 29.4km가 먼저 개통됐고 1927년 9월, 안성-장호원 구간이 신설됐다. 정식명칭인 ‘안성선’은 1946년 5월, 국유철도로 흡수된 이후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철도의 개설은 교통의 요지였던 조선시대의 명성을 이어 안성이 경기 남부권과 충남권을 아우르는 시장 형성과 배후지 확대, 경제활동 강화 등 안성의 상황을 다소 호전시켰다.

이후 안성선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전쟁 물자 동원을 이유로 철거되는 상황에 처했지만 광복 이후 복구돼 다시금 운행이 재개됐다. 1960년대에는 철도 5개년 계획에 따라 경기남부선의 명칭으로 안성역에서 원주역까지 81km를 연장하려 했지만 부설이 취소되기도 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고속도로가 개통됐던 1970년대에는 철도 운송이 도로 교통과의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현실을 맞이했다. 이에 따라 중부 내륙지방에서 안성선의 효용성 역시 점차 하향되는 위기를 겪었다.

특히 안성선의 여객 수송량은 1972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를 보였고, 1977년부터는 급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적자 경영이 지속되자 1985년에는 안성선의 여객영업이 중지됐고, 입장-안성 구간의 폐지를 시작으로 1989년 1월, 남아있던 구간마저 철거되며 안성선은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 ‘안성철도시대’를 다시 꽃피우다

지난 6월 29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최종확정안에 안성의 숙원인 수도권내륙선과 평택부발선이 반영됐다. 이날은 안성시청에서 화성시와 청주시, 진천군 등 4개 시군이 모여 수도권내륙선 최종 확정을 환영하고자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성철도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으로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전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19만 시민의 절실함이 스며든 안성철도는 지역혁신과 함께 모두의 염원이 담겨있다. 특히 안성은 지난날의 명성을 토대로 동서남북을 잇는 사통팔달의 근거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성시는 효율적인 철도운영은 물론, 도로정비와 인프라 조성 등 지역의 지향점인 물류중심도시로 성장해 안성혁신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입장이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지역균형발전과 교통편의의 이정표가 될 안성철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안성, 누구나 오고 싶은 안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부활한 안성철도시대가 지역의 역사와 위상을 근간으로 안성발전의 또 다른 초석을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50km짜리가 어디로 달릴까 2021-10-23 10:09:33
노선도 중요하고 단선의한계 극복도 중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