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 내 인생의 노래들
“꽃들은 어디로” : 내 인생의 노래들
  • 시사안성
  • 승인 2021.10.0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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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31

1970년대에 방송을 통해 자주 들었던 미국 노래가 있다. <꽃들은 어디로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피트 시거 작사작곡)라는 곡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먼저 이 노래의 1절 노랫말을 감상해보자.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Long time passing,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Long time ago,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Young girls picked them everyone,

When will they ever learn, when will they ever learn?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세월 동안,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래 전,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린 소녀들이 모두 꺾어갔네,

그들은 언제나 깨달을까, 그들은 언제나 깨달을까?

 

노랫말의 후렴과 문장이 거의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이 노래에서 이어지는 노랫말의 내용은 이렇다: “어린 소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젊은이들에게로 갔네” / “젊은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군인이 되었네” / “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무덤으로 갔네” / 무덤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꽃이 되었네“. 그리고는 1절이 반복되면서 순환형식의 노래가 된다.

시거는 자신의 노랫말을 196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하일 소콜로프의 소설 <<그리고 돈 강은 조용히 흐르네>>(1934) 에서 언급된 카자크 민요에서 따왔다고 한다. 노래의 멜로디는 아일랜드의 벌목 노동요에서 차용하였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말 미국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펼쳐졌을 때 나온 반전(反戰)가요이다. 독일계 미국 배우 겸 가수인 마를렌 디트리히와 반전 평화 운동가인 조안 바에즈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언뜻 보면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전사하여 무덤으로 갔다는 내용만이 전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적인 노랫말 중에 삽입되어 있는 이 한 대목, 즉 젊은이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모두 전사하여 무덤에 묻혔다는 내용이 애틋한 곡조와 더불어 우리를 반전 평화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젊었을 때 나는 이 노래가 반전가요라는 것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가 방송을 통해 들은 영어 노래 가사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당시 악보집에 나와 있었던 이 곡의 축약된 번역/번안 가사에는 전쟁과 관련된 노랫말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훗날 <Sag mir, wo die Blumen sind 꽃들은 어디에 있는지 말해다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노래의 독일어 가사를 살펴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이 노래가 반전가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이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 우리말 번안 가사를 음미해보니 더욱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안 가사 중에 씩씩한 청년은 어디로 가나 / 흐르는 세월 따라서 백발 되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원래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은 게 아닌가. 만약 이 번안 가사처럼 젊은 사람들이 전쟁의 폐해 없이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다면, 그리하여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번안 노랫말을 원곡과 달리 역설적으로 바꾸어 만들어 놓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쩌면 전쟁의 폐해 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평화스럽게 늙어 가고 싶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렇게 그려놓은 건 아닐까?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인과 폭력, 전쟁을 피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인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주 속에서 잠시 이 지구상에 왔다가 가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전쟁을 막아내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평화를 일구어나가자!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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